4장
혼자서는 용사가 될 수 없다
붉은 협곡은 고원의 북쪽 끝에서 시작됐다.
붉은 암벽이 양쪽에 솟고, 그 사이로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북쪽 요새로 가는 유일한 길. 포로들이 끌려가는 길. 네 사람은 작은 장터를 떠난 지 이틀 만에 협곡 입구에 닿았다.
이틀 동안 에반은 성검을 매일 닦았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날에 기름을 먹이고 손잡이의 가죽을 매만졌다. 미라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검은 닦는다고 세지지 않아."
"알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닦아."
에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닦고 싶었다. 손에 쥐고 있고 싶었다. 저주받은 갑옷을 무너뜨린 검. 다렌도 갖지 못했던 무기. 그는 생각했다. 지금 마왕을 만나도 해볼 만하다. 스승이 못 한 것을, 이 검이 있으면. 그 생각은 하면 할수록 단단해졌다. 쇠를 두드리면 단단해지듯이.
협곡 입구에서 미라가 손을 들었다. 넷은 바위 뒤에 엎드렸다.
포로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 서른 명 남짓. 마왕군 병사 열둘. 늑대는 없었다. 협곡이 좁아 늑대가 다니기 어려웠다. 포로들은 발을 끌며 걸었다. 몇은 넘어졌고, 병사가 사슬을 당겨 일으켰다. 북쪽 요새로 가는 길이었다.
미라는 바위 뒤에 엎드려 그 행렬을 세었다. 지도를 폈다.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여기서 친다. 저 바위 모퉁이. 병사들이 한 줄로 늘어지는 데. 포로를 풀고, 저 좁은 길로 빠진다. 적 본대가 오기 전에."
"본대가 와요?" 에반이 물었다.
"올 수 있어. 요새가 가까워. 그래서 빨리 끝낸다."
"본대가 오면요?"
"오기 전에 끝낸다고 했어."
에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본대가 오면 좋겠다고.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본대가 와도 괜찮다고. 성검이 있으니까.
노엘이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에반은 몰랐다.
작은 장터를 떠난 첫날 밤, 세드가 코를 골았다.
야영지였다. 고원 끝의 바위 그늘. 불을 작게 피우고 넷이 둘러앉았다. 세드가 먼저 잠들었다. 요새 이야기를 하다가, 지팡이를 안은 채. 그리고 코를 골았다. 크게. 바위에 울리게.
노엘이 약 봉투를 꺼냈다. 거기에 뭔가를 적었다. 에반이 보았다.
"뭐 적어요?"
"이름."
"누구요?"
"코 고는 사람."
다음 날 아침 노엘은 세드에게 약을 주었다. 작은 병. 갈색 액체. "피로에 좋아요." 세드는 받아 마셨다. 그리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혀를 내밀었다. 물을 찾았다. 물은 에반이 들고 있었다. 에반은 웃느라 물을 주지 못했다.
"이게 뭡니까."
"약이에요."
"쓴데요."
"약은 써요."
세드는 노엘을 보았다. 노엘은 약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미라가 옆에서 말했다.
"어젯밤에 코 골았어."
"……아."
"실제 약효는 같아요." 노엘이 말했다. "단 것도 있는데 그건 안 고는 사람 거예요."
세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코를 골지 않았다. 아니, 골았다. 그러나 작게. 노엘은 이름을 적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에반이 마을 아이에게 약을 주게 됐다. 고원 아래 작은 마을. 아이가 열이 났다. 노엘이 약을 조제했고, 에반이 들고 갔다. 아이가 물었다.
"써요?"
에반은 약을 보았다. 노엘이 준 것. 갈색.
"……달아."
아이가 마셨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울었다. 에반은 당황했다. 노엘이 왔다.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에반에게 병을 내밀었다.
"한 모금."
"네?"
"거짓말했으니까. 한 모금."
에반은 마셨다. 썼다. 혀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그를 보았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아이가 웃었다.
"아주 써요." 노엘이 아이에게 말했다. "그런데 열이 내려요. 둘 다 진짜예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은 혀를 내밀고 있었다. 노엘이 그를 보았다.
"치료는 진지하게 해요. 허세는 가볍게 하고."
"……허세 아니었어요."
"그럼 뭐예요."
"……아이가 무서워할까 봐."
"무서워할 거예요. 쓰니까. 그래도 마셔요. 그게 치료예요."
에반은 그 말을 생각했다. 걸으면서. 협곡까지. 쓰다고 말하고 마시게 하는 것. 달다고 말하고 마시게 하는 것. 둘 다 마신다. 그러나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그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아이가 웃었다는 것은 기억했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을 때.
협곡 입구가 보이는 밤, 노엘이 그의 옆에 앉았다. 불 옆에.
"그 검, 왜 자꾸 닦아요."
"……그냥요."
"미라 씨가 뭐라고 했어요?"
"닦는다고 세지지 않는다고."
"맞는 말이에요."
"알아요."
노엘은 불을 보았다.
"수도원에서 그 검을 든 사람들이 있었어요. 순례 기사들. 수십 명.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 사람들이 뭘 했는지."
"뭘 했어요?"
"대부분은 아무것도. 검을 들고 순례하고 돌려놨어요. 몇은 싸웠고. 몇은 죽었고."
"……그 검을 들고요?"
"그 검을 들고요." 노엘이 말했다. "검이 지켜 주지 않아요. 들고 나가면 직접 지켜요. 내가 그랬잖아요."
에반은 성검을 보았다. 옆에 놓인. 닦은. 그는 그것을 보고, 노엘을 보았다.
"왜 지금 말해요."
"지금 당신 얼굴이 그래서요."
"어떤데요."
"검이 다 해 줄 거라고 믿는 얼굴."
에반은 대답하지 못했다. 노엘은 일어나서 환자—미라의 어깨, 돌다리 때부터 아팠던—를 보러 갔다. 에반은 불 옆에 남았다. 그는 노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생각과 믿음은 달랐다. 그는 그 차이를 다음 날 협곡에서 알게 된다. 방패가 찢어지는 소리로.
기습 전날 밤, 미라가 에반을 데리고 정찰을 갔다.
둘이서. 세드와 노엘은 야영지에. 협곡 위 능선으로. 바위를 타고. 미라는 한 손으로 바위를 탔다. 느렸다. 에반이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을 그녀가 알게 하지 않으려고 앞을 보는 척했다. 그녀는 알았다. 말하지 않았다.
능선에서 전진기지가 보였다. 협곡 안쪽. 천막 열. 횃불. 병사 스물쯤. 포로 행렬이 거기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내일 아침 떠날 것이다. 북쪽으로.
"출구." 미라가 말했다. 작게.
"……네?"
"우리 출구. 어디야."
에반은 협곡을 보았다. 좁은 길. 오른쪽. 산 쪽으로 빠지는. 어제 미라가 지도에서 짚은 곳. 그는 그것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 바위 모양으로.
"저기요. 오른쪽. 바위 둘 사이."
"그 다음은."
"산길. 올라가면 헤른 쪽."
"적이 거기 막으면."
에반은 다시 보았다. 다른 길. 없었다. 아니, 있었다. 협곡 바닥을 따라 남쪽으로. 왔던 길.
"……왔던 길로요. 남쪽."
"멀어."
"그래도 길이에요."
미라는 그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됐어. 내려가자."
에반은 그것이 시험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통과했는지도. 그녀는 "잘했어"라고 하지 않았다. 고개 한 번. 그것이 그녀의 잘했어였다. 그는 그것을 받았다. 돌다리에서 수레 바퀴를 끼웠을 때 받은 것과 같은 것.
내려오는 길에 그는 성검을 생각했다. 등에 멘. 출구를 생각하는 것과 성검을 드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는 그 둘을 동시에 생각할 수 없었다. 출구를 생각하면 성검이 멀어졌고, 성검을 생각하면 출구가 멀어졌다. 그날 밤 그는 출구를 생각하며 잠들었다. 다음 날 능선 위에서 발테르를 보았을 때, 출구는 없어졌다. 성검만 남았다.
기습은 성공했다.
바위 모퉁이에서 미라가 먼저 나갔다. 방패로 병사 둘을 밀어 쓰러뜨렸다. 세드가 뒤의 넷을 얼렸다. 에반이 베었다. 노엘은 포로들에게 달려가 엎드리라고 외쳤다. 병사 열둘 중 여섯이 쓰러지는 데 숨 몇 번이 걸렸다. 나머지 여섯은 달아났다. 북쪽으로. 요새 쪽으로.
"달아났어." 미라가 말했다. "알릴 거야. 빨리."
에반은 포로들에게 갔다. 쇠사슬. 마법 족쇄. 자물쇠가 아니라 마법으로 잠긴 것. 그는 성검을 댔다. 칼날을 족쇄에. 한 호흡. 족쇄가 풀렸다. 다음 사람. 한 호흡. 풀렸다. 다음. 다음. 서른 명. 그는 서른 번 칼날을 댔고 서른 번 족쇄가 풀렸다. 너무 쉬웠다. 그 쉬움이 그의 머리 어딘가를 가볍게 만들었다.
마지막 포로가 족쇄에서 풀렸을 때, 그가 에반을 올려다보았다. 늙은 남자. 손목에 사슬 자국.
"……용사님?"
에반은 성검을 들고 있었다. 서른 개의 족쇄를 끊은 검. 그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입을 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그 말이 듣기 좋았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노엘이 그것을 보았다. 포로들 사이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젯밤 불 옆에서 한 말을 다시 하지 않았다. 검이 다 해 줄 거라고 믿는 얼굴. 그 얼굴이 지금 거기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환자에게 돌아갔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말해도 듣지 않을 때였다.
"가요." 에반이 늙은 남자에게 말했다. 용사님이라는 말에 답하지 않고. "저 길로."
포로들이 일어섰다. 노엘이 걸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눴다. 미라가 좁은 길을 가리켰다. 협곡 옆으로 빠지는 길. 산쪽으로. 거기로 가면 요새와 반대 방향이었다.
"가요.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포로들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 협곡 북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하나. 무거운. 갑옷의.
흑기사가 나타났다.
검은 갑옷, 검은 방패, 조용한 걸음. 혼자였다. 달아난 병사들이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근처에 있었다. 순찰 중이었거나, 포로 행렬을 뒤따르고 있었거나. 그는 네 사람을 보았고, 포로들을 보았고, 포로들에게는 검을 들지 않았다. 비무장인 사람에게는 검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구출대를 놓아줄 생각도 없었다.
"로가드다." 세드가 중얼거렸다. 얼굴이 하얘졌다. "마왕군의 검객."
"이름을 알아요?"
"마왕성에서 봤어."
로가드는 말이 없었다. 검을 들었다. 에반이 앞으로 나갔다. 성검을 들고.
로가드는 방패로 에반의 검을 밀어내고 빈 곳을 찔렀다. 한 동작이었다. 방패가 검을 치우고, 그 뒤에 검이 왔다. 에반은 간신히 피했다. 갑옷 자락이 찢어졌다. 그는 다시 들어갔다. 다시 밀렸다. 다시 찔렸다. 피했다. 세 번째에 미라가 끼어들었고, 로가드의 검은 미라의 방패에 막혔다. 소리가 협곡에 울렸다.
"쓰러뜨리는 게 아니야." 미라가 에반에게 말했다. 방패를 버티며. "시간을 버는 거야. 다 빠져나갈 때까지."
노엘이 뒤에서 포로들을 좁은 길로 보내고 있었다. 하나, 둘, 열, 스물. 걷는 사람이 업은 사람을 데리고. 세드가 로가드의 발을 얼리려 했다. 로가드는 얼음이 오기 전에 발을 옮겼다. 그는 세드가 뭘 하는지 알았다. 마왕성에서 보았으니까.
에반은 미라의 말을 들었다. 들었으나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는 이기고 싶었다. 저 검은 기사를. 성검으로. 그래야 했다. 그래야 뭔가가 증명됐다. 그는 미라 옆에서 베고, 밀리고, 다시 벴다. 로가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미라가 두 번 신호를 보냈다. 방패를 두드려서. 에반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뜻을 몰랐다. 아직 약속이 없었다.
스물다섯. 스물여덟. 서른.
마지막 포로가 좁은 길로 사라졌을 때, 로가드는 검을 내렸다. 잠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협곡 저편에서 군기가 보였다.
검은 깃발. 흑철의 왕.
마왕 발테르는 멀리 있었다. 협곡 반대편 능선 위에. 검은 갑옷. 빛을 먹는 갑옷. 멀리서도 그것이 보였다. 주위가 밝은데 그만 어두웠다. 그의 곁에서 길들인 화룡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집채만 한 것이 사슬을 끊으려고 날개를 치고 불을 뿜었다. 병사들이 흩어졌다. 발테르는 흩어지지 않았다. 검을 한 번 내리쳤다. 화룡이 무릎을 꿇었다. 한 번이었다. 불이 꺼졌다.
에반은 공포보다 먼저 분노를 느꼈다.
저기 있다. 스승을 죽인 자가. 저기 서 있다. 걸어서 닿을 거리에. 협곡을 가로지르고 능선을 오르면. 그는 거리를 쟀다. 멀지 않았다. 성검이 손에 있었다. 다렌도 갖지 못했던.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은 이미 이틀 전에 끝나 있었다.
"철수." 미라가 말했다. "지금. 에반, 철수—"
에반은 이미 뛰고 있었다.
성검을 뽑아 들고, 협곡 바닥을 가로질러, 능선을 향해. 미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세드의 목소리도. 그는 듣지 않았다. 아니, 들었다. 들었는데 발이 멈추지 않았다. 마을을 지켜라. 그게 네 일이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고, 그 말을 한 사람을 죽인 자가 저기 있었다.
로가드가 그 길을 막았다.
"비켜. 저놈만 쓰러뜨리면 끝나."
"뒤를 봐라." 로가드가 말했다.
"잔말 말고 비켜!"
로가드는 검등으로 에반의 칼날을 밀어냈다. 날이 아니라 등으로. 베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에반은 균형을 잃었다. 한쪽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리고 다시 덤볐다. 로가드가 다시 밀어냈다. 에반은 다시 덤볐다. 세 번째. 그때 능선 위에서 발테르가 귀찮다는 듯 검을 들었다.
에반은 그것을 보았다. 검이 올라가는 것을. 그리고 내려오는 것을. 그 다음에 검이 왼쪽으로 당겨지는 것을. 그것을 보았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검은 충격파가 날아왔다. 먼 거리에서. 소리보다 빨리.
"에반, 숙여!"
미라가 그를 덮었다. 방패를 세웠다. 충격파가 방패에 닿았다.
방패가 찢어졌다.
쇠가 찢어지는 소리를 에반은 처음 들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를 백 배로 키운 것. 그 다음에 다른 소리. 사람의 팔이 꺾이는 소리. 미라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숨이 끊긴 것처럼 소리가 없었다. 그녀의 왼팔이 이상한 각도로 바닥에 닿아 있었다. 팔꿈치가 거꾸로. 방패는 반으로 갈라져 그 옆에 있었다.
노엘이 달려왔다.
"그 애는 이미 졌습니다." 로가드가 능선을 향해 말했다. 큰 소리로. "추격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럼 늦지 마라." 발테르의 목소리가 협곡을 울렸다. 낮고, 지루한. "왕도까지 갈 길이 남았다."
그는 돌아섰다. 화룡이 일어나 그를 따랐다. 군기가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는 에반을 보지도 않았다.
로가드는 쓰러진 미라와, 아이를 업은 세드와, 검을 쥔 채 굳은 에반을 보았다. 아이는 포로 중에 끼어 있던 것으로, 통로에서 세드가 받아 업은 채였다. 로가드는 그것들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검을 거두었다.
"자비가 아니다." 그가 말했다. "이미 진 적을 죽여 공을 세우고 싶지 않을 뿐이다. 다음에는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방패를 들어 보였다. 에반에게. 아니, 미라에게.
"방패는 그렇게 쓰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도 떠났다. 능선 쪽으로. 돌아보지 않고.
협곡에 네 사람만 남았다. 바람이 불었다. 붉은 모래가 날렸다. 노엘이 미라의 팔을 보고 있었다. 세드는 아이를 업은 채 서 있었다. 에반은 성검을 쥐고 있었다. 손이 펴지지 않았다. 그는 미라를 보았다. 보지 못했다. 보았는데 보지 못했다.
세드가 아이를 내려놓았다. 에반에게 밀었다. 에반이 받았다. 세드는 미라에게 갔다.
"업을게요."
"……팔." 노엘이 말했다. "팔 건드리지 말고. 오른쪽으로."
세드는 미라를 업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그는 자기가 달아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 다리가 그쪽으로 가고 싶어 했다. 협곡 아래로. 남쪽으로. 혼자서. 열흘을 걸었던 그 다리가. 그러나 그는 미라를 업었고, 산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요새와 반대쪽. 포로들이 간 길. 큰 용기가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기 발을 보았다. 앞을 보면 멀었고, 뒤를 보면 안 됐으므로, 발을 보았다.
에반은 뒤에서 아이를 업고 따라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노엘은 마지막에 걸었다. 반으로 갈라진 방패를 들고. 아무도 그것을 버리자고 하지 않았다.
발소리와 숨소리만 산길에 남았다.
그 길은 길었다. 세드는 세 번 쉬었다. 미라를 내려놓지 않고, 나무에 기대어. 그때마다 미라의 이가 악물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네 번째는 쉬지 않았다.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았다. 해가 졌다. 안개가 올라왔다. 산길은 계속됐다.
에반은 세드의 등을 보며 걸었다. 단추 하나가 다른 외투의 등. 그 위에 미라가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업어야 했다. 내가 업겠다고 해야 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드가 먼저 말했다. 열흘을 혼자 걸어온 사람이. 늑대 앞에서 굳는 사람이.
빈 오두막은 산길 중턱에 있었다.
사냥꾼이 쓰던 것인지 버려진 지 오래였다. 문이 반쯤 떨어져 있었고, 안에는 침상 하나와 화덕 하나. 노엘이 미라를 침상에 눕히라고 했다. 세드가 눕혔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접히듯이.
노엘은 출혈을 막았다. 팔을 폈다. 미라가 소리를 냈다. 처음으로. 짧게. 노엘은 부목을 댔다. 나뭇가지와 망토 조각으로. 손이 빨랐다. 낭비가 없었다. 그러나 끝나고 나서 그녀는 한참 미라의 팔을 보았다.
"팔꿈치가 부서졌어요. 신경도." 그녀가 말했다. "뼈는 붙을 거예요. 감각은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는 게 무슨 뜻이야." 미라가 물었다. 이를 악문 채.
"돌아올 수도 있고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거짓말은 안 해요."
미라는 눈을 감았다.
에반은 문가에 서 있었다. 아이는 오두막 밖에서 잠들어 있었다. 세드의 외투를 덮고. 에반은 미라를 보았다. 침상의. 부목을 댄 팔. 그는 입을 열었다.
"다시는 앞에 나서지 않을게요. 제가—"
"네가 안 싸우면 내 팔이 돌아와?"
미라의 목소리였다. 고통으로 갈라진. 눈은 감은 채.
"미안해요. 제가……"
"지금은 네 미안하다는 말도 아파." 미라가 말했다. "오늘은 밖에 있어 줘."
에반은 나갔다.
오두막 안에서 미라는 혼자 단추를 잠그려 했다. 노엘이 치료하느라 풀어 놓은 셔츠 단추. 오른손으로. 되지 않았다. 손가락이 단추를 잡았는데 구멍을 찾지 못했다. 한 손으로 단추를 잠가 본 적이 없었다. 노엘이 손을 뻗었다. 미라는 처음에 그 손을 밀어냈다. 오른손으로. 그리고 다시 단추를 잡았다. 안 됐다.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노엘이 단추를 잠갔다. 위에서부터.
"화내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미라가 말했다. 천장을 보며.
"누가 그래요." 노엘이 말했다. 단추를 잠그며. "내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의사가 아니에요."
"……화나."
"알아요."
"걔한테. 나한테도."
"둘 다 괜찮아요."
미라는 눈을 감았다. 노엘은 마지막 단추를 잠그고 손을 뗐다. 그리고 세드를 보았다. 세드는 바닥에 앉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눈을 뜨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당신도 쉬어요."
"……네."
세드는 쉬지 않았다. 밤새 화덕의 불을 봤다. 불이 꺼지면 나무를 넣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정쯤 노엘이 옆에 앉았다. 미라가 잠든 뒤. 약 상자를 닫고.
"다리." 노엘이 말했다.
"……네?"
"당신 다리. 보여 줘요."
세드는 바지를 걷었다. 무릎. 부어 있었다. 산길 내내 미라를 업은 다리. 노엘이 손을 댔다. 눌렀다. 세드가 소리를 냈다.
"내일 못 걸어요. 이대로면."
"걸을 수 있어요."
"걸을 수는 있죠. 업지는 못해요."
노엘은 약을 발랐다. 차가운 것. 천으로 묶었다. 세드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자기 무릎을 묶는 손을. 수도원에서 적병을 묶던 손. 떨리지 않는.
"당신 손은요." 세드가 물었다.
노엘이 고개를 들었다.
"우물에서. 오래 씻었잖아요."
"……봤어요?"
"미라 씨가 기다리는 걸 봤어요. 그래서."
노엘은 천을 다 묶었다. 매듭을 지었다.
"손은 괜찮아요. 씻으면 돼요."
"안 씻기던데요."
"……그래도 씻어요. 안 씻으면 더 안 씻겨요."
세드는 그 말을 생각했다. 안 씻으면 더 안 씻긴다. 그는 열흘 동안 안 씻었다. 술로. 그래서 더 안 씻겼다. 지금 그는 불을 보고 있었다. 나무를 넣으며. 그것이 씻는 것인지 몰랐다. 아마 아니었다. 그러나 안 씻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제가 업을게요." 노엘이 말했다. "오전에. 당신은 오후에."
"……네."
"에반 씨는 저녁에."
"걔가 할까요."
"하겠죠. 시키면."
"시키면."
"아니면 알아서 하든가요. 그 애, 반만 채우는 거 배우면 그 다음도 배워요. 느리지만."
세드는 노엘을 보았다. 노엘은 화덕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에반을 두 번 본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수도원에서 한 번, 협곡에서 한 번. 두 번으로 그녀는 그것을 알았다. 세드는 두 해를 보았는데 몰랐다. 아니, 알았다. 다렌이 말해 주었으니까. 저 녀석 느려. 그런데 배워. 그는 그 말을 지금 떠올렸다. 불 앞에서.
밖에서 에반은 오두막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밤이었다. 성검은 옆에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틀 동안 아침저녁으로 닦았던 검을. 포로 서른 명은 무사히 빠져나갔다. 그것은 성공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았다. 미라도, 노엘도, 세드도. 그러나 에반은 그날 밤 내내 찢어지는 방패 소리만 들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를 백 배로 키운 것. 그 다음의 소리.
안개가 오두막을 감쌌다. 아이가 잠결에 뒤척였다. 에반은 아이에게 자기 망토를 덮어 주었다. 낡은 푸른 망토. 그리고 다시 벽에 기대앉았다. 검은 거기 있었다. 그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
아침에 포로들이 왔다.
산길 위쪽에서. 서른 명. 좁은 길로 빠져나간 사람들. 그들은 밤새 산을 올랐고, 오두막의 연기를 보고 내려왔다. 노엘이 그들을 보았다. 다친 사람 다섯. 걷지 못하는 사람 둘. 그녀는 미라 옆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갔다. 자기 손을 보지 않고.
포로 중 하나가 미라를 보았다. 침상의. 부목을 댄 팔.
"기사님이……"
"괜찮아." 미라가 말했다. 괜찮지 않은 목소리로. "헤른까지 가야 해. 산 너머.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못 걷는 사람 업어."
포로들은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업었다. 시키는 대로. 아직은 시키는 대로였다.
미라를 업는 것은 세드가 하겠다고 했다. 에반이 먼저 말하려 했다. 입을 열었다. 세드가 먼저 말했다. "제가." 에반은 입을 다물었다. 세드가 미라를 업었다. 미라는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할 힘이 없었다. 에반은 아이를 업었다. 다시. 그리고 성검을 들었다. 들어야 했다. 산길에 뭐가 있을지 몰랐으니까. 그는 검을 들고 걸었다. 보지 않고. 손에 든 것을 보지 않고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산길은 하루였다. 헤른까지. 포로 서른, 네 사람, 아이 하나.
점심에 쉴 때 노엘이 에반에게 왔다. 빵을 주었다. 세드의 자루에서. 에반은 받았다. 먹지 않았다.
"먹어요."
"……안 먹혀요."
"그래도 먹어요. 저녁에 미라 씨 업어야 할지도 몰라요. 세드 씨 다리가 한계예요."
에반은 세드를 보았다. 나무에 기대어 앉은. 다리를 뻗고. 손으로 무릎을 누르며. 그는 빵을 먹었다. 두 조각. 네 조각이 아니라.
저녁에 세드의 다리가 풀렸다. 노엘이 말한 대로. 그는 미라를 내려놓으려다 무릎이 꺾였다. 미라가 소리를 냈다. 에반이 받았다. 미라를. 오른쪽으로. 팔을 건드리지 않고. 노엘이 가르쳐 준 대로. 그는 미라를 업었다. 가벼웠다. 생각보다. 아니, 무거웠다. 무게가 아니라 다른 것이.
"……내려놔." 미라가 말했다. 등 뒤에서.
"안 돼요."
"세드가 업는다고 했어."
"세드 다리가 안 돼요."
미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에반은 걸었다. 세드가 뒤에서 아이를 업었다. 다리를 끌며. 노엘이 맨 뒤에서. 갈라진 방패를 들고.
헤른의 불빛이 보였을 때 미라가 말했다. 작게. 에반의 귀 옆에서.
"……화나 있어. 아직."
"알아요."
"그런데 업는 건 괜찮아."
에반은 대답하지 못했다. 걸었다. 안개 속으로. 마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