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같이 갈 생각은 없었어
불은 북문에서 시작됐다.
에반이 광장에 닿았을 때 이미 지붕 두 채가 타고 있었다. 늑대 기병. 사람만 한 늑대를 탄 마왕군 척후들이 골목을 누비며 횃불을 던졌고, 그 뒤로 창을 든 보병들이 들어왔다. 늑대들은 짖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개처럼 짖지 않고, 소리 없이 달려와서 사람을 물었다.
마을은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봉화가 오른 지 반 시진도 안 됐다. 사람들은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광장에 모였고, 광장은 적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었다. 에반은 그 사이를 가로질러 달렸다. 검은 뽑혀 있었다. 손이 떨리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적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었다. 억양이 이상했다.
"용사의 목걸이를 내놓아라! 인장이 달린 것이다! 가져오는 자는 살려 준다!"
에반은 그 말을 듣고 자기 목에 손을 댔다. 목걸이는 거기 있었다. 세드가 건네 준 다렌의 인장. 끊어진 줄을 아버지가 새 가죽끈으로 바꿔 주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그가 아는 것은 하나였다. 적이 다렌의 것을 원한다면, 주지 않는다.
나중에야 알게 되는 일이지만, 마왕은 다렌의 시신을 손에 넣고도 인장을 찾지 못했다. 인장이 없으면 왕국은 용사의 죽음을 쉽게 믿지 않을 것이고, 발테르는 그것을 왕도 성문 앞에 내걸어 사기를 꺾을 셈이었다. 세드가 주워 온 목걸이는 유품이자 적이 찾는 물건이었다. 에반은 그런 것을 몰랐다. 그는 그저 성문 쪽으로 달렸다.
혼자.
광장에서 북문까지는 곧은 길 하나였다. 그 길을 달리면서 에반은 처음으로 사람을 베었다. 창을 든 보병 하나가 골목에서 튀어나왔고, 에반은 생각하기 전에 검을 휘둘렀고, 검은 창 자루를 지나 그 뒤의 팔을 베었다. 보병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의 비명이었다. 에반은 그 소리를 들으며 계속 달렸다. 멈추면 안 된다는 것만 알았다. 손에 전해진 감촉이 허수아비와 달랐다. 허수아비는 베면 끝났다. 사람은 베면 소리를 냈다.
같은 시각, 세드는 여관 이층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손이 빨랐다. 그는 짐을 빨리 싸는 데 익숙했다. 외투, 지팡이, 사흘치 빵, 돈주머니. 열흘 동안 이 방에서 나가지 않았고, 술병이 침대 밑에 넷이나 굴러다녔고, 그 열흘이 지금 끝나고 있었다. 창밖에서 불빛이 흔들렸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는 창을 보지 않았다. 보면 발이 멈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왕성에서도 그랬다.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했다. 철문 앞에서, 주문을 쥐고 있을 때, 뒤에서 오는 것들을 보았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보는 순간 발이 움직였다.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그 발은 지금도 같은 발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여관 입구까지 갔다. 주인은 없었다. 이미 달아났거나 광장에 있었다. 세드는 문을 열었다. 거리에는 연기가 깔려 있었고, 뒷길은 비어 있었다. 저리로 가면 숲이다. 숲길은 그가 안다. 다렌과 몇 번이나 걸은 길이었다. 숲을 지나면 강변 여관이 나오고, 거기서 북쪽으로 가면 국경 수비대의 성채다. 성채까지 가면 살 수 있다. 그는 그 길을 머릿속에서 끝까지 그렸다. 끝까지 그리면 발이 움직였다.
그때 창문 아래에서 아이가 넘어졌다.
대여섯 살쯤 된 아이였다. 어른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달리다가 돌에 걸린 모양이었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일어나려 했다. 무릎이 까졌고, 손바닥을 짚었고, 그 뒤로 늑대의 그림자가 골목 모퉁이를 돌았다. 늑대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이는 늑대를 보지 못했다.
세드는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발이 뒤로 돌았고, 손이 지팡이를 쥐었고, 짧은 주문이 입에서 나왔다. 긴 주문은 할 수 없었다. 긴 주문은 뒤를 돌아보게 했다. 짧은 것. 확실한 것. 불길이 갈라지며 아이와 늑대 사이에 얼음벽이 섰다. 늑대가 얼음에 부딪히고 물러났다. 세드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손이 떨렸다.
"엄마." 아이가 말했다.
"찾아 줄게." 세드가 말했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자기도 몰랐다.
이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니었다. 과거를 만회하는 무엇도 아니었다. 눈앞에 넘어진 아이 하나를 지나칠 수 없었을 뿐이다. 세드는 그 차이를 알았다. 마왕성에서 그가 버린 것은 눈앞에 있지 않았다. 문 너머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버릴 수 있었다. 보이는 것은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그냥 눈의 문제였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에반은 북문 앞에서 포위됐다.
늑대 세 마리. 등 뒤에는 불타는 창고. 그는 검을 들고 있었고, 처음 베어 본 적의 피가 날에 묻어 있었다. 손이 떨리는 것을 자기도 알았다. 늑대 한 마리가 달려들었고 그는 막았다. 막는 것은 됐다. 검을 세우고 버티는 것. 늑대의 이빨이 검날에 걸렸고, 늑대는 물러났다. 다렌이 가르친 받아흘리기는 되지 않았다. 옆으로 보내려고 하면 손목이 먼저 굳었다. 늑대가 다시 왔다.
그때 발밑이 얼었다.
늑대 두 마리의 발이 땅에 붙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에반을 향해 오던 길에 미끄러졌다. 에반은 돌아보았다. 골목 입구에 세드가 서 있었다. 한 팔에 아이를 안고, 다른 손에 지팡이를 들고. 얼굴은 종이처럼 하얬다. 열흘 동안 술만 마신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서 있었다.
"막아!" 세드가 외쳤다. "한 마리만! 나머지는 내가—"
에반은 막았다. 돌진하는 늑대를 검으로 받아 세웠고, 그 사이 세드가 나머지의 발밑을 다시 얼렸다. 에반이 베었다. 늑대의 목이었다. 짐승은 소리 없이 쓰러졌다. 두 번째 늑대가 얼음을 깨고 나왔다. 에반이 막았다. 세드가 얼렸다. 에반이 베었다.
그리고 세드는 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불덩이를 모으는 주문. 남은 늑대와, 그 뒤로 오는 보병들을 한꺼번에 쓸어 낼 수 있는 것. 에반은 그 주문의 울림을 들었다. 공기가 뜨거워졌다. 그러나 주문 중간에 세드는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 안쪽을.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다시 앞을 보았고, 주문을 이었고, 또 돌아보았다. 세 번째 돌아볼 때 주문이 끊겼다. 모이던 열기가 흩어졌다.
"뭐 하는 거예요!"
세드는 대답하는 대신 굳었다. 에반이 짜증을 내자 더 굳었다. 지팡이를 쥔 손이 하얘졌다. 에반은 그것을 보았고,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 보병들이 오고 있었다.
결국 둘은 긴 주문을 포기했다. 짧고 확실한 것만 썼다. 에반이 한 마리를 세우면 세드가 나머지를 얼리고, 에반이 벤다. 보병이 오면 세드가 발밑을 얼리고 에반이 창을 쳐 낸다. 말은 없었다. 말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됐다. 에반이 어디로 움직일지 세드가 알았고, 세드가 언제 얼릴지 에반이 알았다. 두 해 동안 울타리에 기대어 에반이 넘어지는 것을 본 사람이었다. 에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늑대 기병대장은 보병들 뒤에서 왔다. 다른 늑대보다 머리 하나는 큰 짐승을 타고, 긴 창을 들고. 그는 에반을 보고 목걸이를 보았다. 목걸이를 보고 웃었다.
"거기 있었군."
에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이 왔다. 그는 막았다. 창은 검보다 길었고, 막으면 밀렸다. 두 번 밀리고 세 번째에 에반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발밑이 얼었다. 늑대의 발이. 짐승이 비틀거렸고, 대장의 창끝이 흔들렸고, 에반은 그 순간 생각 없이 앞으로 들어갔다. 창 자루 안쪽으로. 검이 대장의 옆구리에 들어갔다.
늑대 기병대장을 쓰러뜨렸을 때 북문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나머지 보병들은 대장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물러났다. 잠깐이었다. 본대가 오면 다시 올 것이다.
"마법사 맞아요?" 에반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아까 그 긴 주문은 왜 멈췄어요?"
"늑대 이빨을 가까이서 보느라."
"제가 막고 있었잖아요."
"네가 열일곱이라서 안심이 안 됐거든."
"그럼 지금부터 잘 보세요."
에반은 돌아섰다. 그리고 검집을 문틀에 부딪쳤다. 새 검집이었다. 쇳소리가 났다. 세드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고, 실패했다. 짧게, 코로 내는 웃음이었다. 에반은 그것을 못 들은 척했다. 못 들은 척하면서 귀가 뜨거워졌다.
아이는 세드의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불 속에서. 세드는 그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가르도의 본대가 온다는 소식은 피난민 틈에서 전해졌다.
광장 쪽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가르도. 수인 장군. 도끼를 든. 마을 하나를 하룻밤에 재로 만드는 부대. 선봉대가 아니라 본대. 늑대 기병이 길을 열고, 그 뒤로 본대가 들어와 남은 것을 태운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이웃 마을이 그렇게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에반도 들은 적이 있었다. 먼 이야기였다. 지금은 아니었다.
"마을을 버려야 해." 세드가 말했다.
"싸울 거예요."
"뭘로. 네 검 하나로?"
에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창고 쪽으로 걸었다. 거기서 싸울 생각이었다. 창고 앞은 길이 좁았다. 좁은 길에서는 한 번에 한 사람만 올 수 있고, 한 사람씩 오면 그는 벨 수 있었다. 다렌은 그렇게 가르쳤다. 아니, 가르치지 않았다. 그가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마을을 지켜라. 그게 네 일이다. 그는 그 말을 쥐고 있었다. 그 말대로 하면 스승이 돌아올 것처럼.
그러나 창고 문 안쪽, 쌓인 가마니 뒤에서 작은 손이 그의 망토를 붙잡았다.
아이였다. 세드가 안고 있던 아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 창고에 숨어 있다가 혼자 남은. 열 살쯤.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었고, 손은 에반의 망토 자락을 놓지 않았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붙잡고 있었다.
에반은 그 손을 보았다. 검을 보았다. 북문 너머에서 올라오는 횃불의 줄을 보았다. 횃불은 많았다. 셀 수 없이. 언덕을 따라 줄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저것이 본대다.
그는 아이를 안아 들고 달렸다.
처음이었다. 적을 쓰러뜨리는 대신 사람을 데리고 달린 것은.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달리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무거웠고, 검은 등에 멨고, 길은 연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드가 간 쪽으로 달렸다.
광장을 지나야 했다. 광장은 불이었다. 종이꽃이 타고 있었다. 붉은 것, 노란 것. 불이 붙으면 색이 없어졌다. 그 한가운데 아버지가 있었다.
대장장이. 망치를 들고. 큰 망치. 쇠를 치는 것. 그는 그것으로 사람을 치고 있었다. 마왕군 보병 둘이 그 앞에 쓰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팔에 피. 자기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몰랐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열 명쯤. 아버지가 숲 쪽으로 밀어 보내고 있었다. 한 사람씩. 등을 밀어서.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보았다. 에반을 보았다. 품의 아이를 보았다. 검을 보았다. 등에 멘.
"가라."
"같이—"
"가라고." 아버지는 사람을 또 밀었다. 노파였다. 노파가 비틀거리며 숲 쪽으로 갔다. "이 사람들 데리고. 숲으로. 마법사가 거기 있다."
"아버지는요."
"뒤에 더 있다."
에반은 광장을 보았다. 집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더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밀어 보내려고. 마지막까지. 에반은 그것을 보았다. 아이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그를 보았다. 그리고 망치를 들었다. 보병 하나가 골목에서 나왔다. 망치가 내려갔다.
"가!"
에반은 갔다.
달리면서 돌아보았다. 한 번. 아버지가 서 있었다. 망치를 들고. 불 속에. 사람들을 밀어 보내며. 그 다음은 보지 못했다. 연기가 가렸다.
세드는 숲길 입구에서 피난민들을 모으고 있었다. 서른 명쯤. 노인과 아이가 많았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떠났고, 남은 것은 빨리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쪽." 세드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숲길로. 한 줄로. 내 뒤를 따라와요."
숲길 끝에 이르러서야 에반은 뒤를 돌아보았다.
라움 마을이 타고 있었다. 지붕 두 채가 아니라 전부. 종이꽃이 걸려 있던 광장이 그 불 속 어딘가에 있었다. 대장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있었다. 망치를 들고. 불 속에. 그 다음은 보지 못했다. 에반은 아이를 안은 채 서서 불을 보았다. 아이가 그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가자." 세드가 말했다. 그의 뒤에서. "지금은 봐도 소용없어."
에반은 돌아섰다.
세드는 이 숲을 알았다. 어디서 길이 갈라지고, 어디에 개울이 있고, 어디서 쉬면 안 되는지. 다렌과 몇 번이나 걸은 길이었다. 그는 피난민들을 이끌고 밤새 걸었다. 뒤처지는 사람이 있으면 멈췄고, 멈추면 뒤를 보지 않으려고 앞만 보았다. 에반은 행렬의 맨 뒤를 걸었다. 적이 뒤에서 오면 자기가 먼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적은 오지 않았다. 마을을 태우느라 바빴다.
에반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도망치는 길을 잘 안다.
새벽에 그들은 강변 여관에 닿았다.
숲길은 길었다.
피난민 서른 명. 노인 열둘, 아이 아홉, 다친 사람 넷, 나머지는 그들을 부축하는 사람들. 세드가 앞에 섰고 에반이 맨 뒤에 섰다. 횃불은 켜지 않았다. 켜면 멀리서 보였다. 달이 반쯤 있었다. 그것으로 걸었다.
한 시진쯤 갔을 때 노인 하나가 주저앉았다.
"못 가겠소."
세드가 돌아왔다. 행렬 맨 앞에서 맨 뒤까지. 그는 노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디가 아프세요."
"무릎. 오래전부터. 이제 안 움직여."
세드는 노인의 무릎을 보았다. 손을 댔다. 짧은 주문. 노인이 "어" 하고 소리를 냈다. 무릎이 따뜻해진 것이다. 통증을 누르는 마법. 치유는 아니었다. 세드는 치유 마법을 못 했다. 그러나 통증을 잠깐 누를 수는 있었다.
"반 시진 갑니다. 그 다음엔 또 해 드릴게요."
노인은 일어섰다. 걸었다. 반 시진 뒤 세드가 다시 왔다. 다시 눌렀다. 그렇게 밤새. 에반은 그것을 맨 뒤에서 보았다. 세드가 행렬을 거슬러 오고, 쭈그리고 앉고, 다시 앞으로 가는 것을. 여섯 번. 일곱 번.
아이가 에반의 등에서 물었다.
"그거 진짜 검이에요?"
"응."
"사람 베어 봤어요?"
에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밤 베었다. 처음으로. 그 소리가 아직 손에 있었다.
"무서웠어요?"
"……응."
"나도 무서웠어요."
아이는 그 말을 하고 잠들었다. 에반의 등에서. 에반은 아이의 무게를 느끼며 걸었다. 검은 등에 멘 채. 검과 아이가 같은 등에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새벽이 가까워질 때 세드가 멈췄다. 길이 갈라지는 곳. 왼쪽은 넓고 오른쪽은 좁았다.
"오른쪽."
"왼쪽이 넓은데요." 누군가가 말했다.
"왼쪽은 강가로 나가요. 거기서 보여요. 오른쪽은 안 보여요."
행렬은 오른쪽으로 갔다. 좁은 길. 나뭇가지가 얼굴을 쳤다. 그러나 반 시진 뒤 강변 여관의 불빛이 보였을 때, 아무도 뒤에서 쫓아오지 않았다.
에반은 세드의 등을 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어디로 가면 안 보이는지 안다. 그것이 도망치는 사람의 기술인지, 사람을 데리고 가는 사람의 기술인지 그는 몰랐다. 어쩌면 같은 것이었다.
강변 여관은 숲이 끝나는 곳에 있었다. 큰 강의 지류가 흐르고, 나루가 있고, 여관이 하나 있었다. 주인은 피난민을 받아 주었다. 마구간까지 열어 주었다. 서른 명이 바닥에 누웠고, 아이들은 바로 잠들었고, 노인들은 잠들지 못했다.
에반은 잠들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뒤 그는 마구간에 앉았다. 등불 하나. 자기 검을 꺼냈다. 날에 피가 말라 있었다. 늑대의 것. 사람의 것. 그는 그것을 닦았다. 천으로. 오래. 피는 잘 안 지워졌다. 그는 기름을 먹였다. 아버지가 가르친 대로. 날이 다시 빛났다. 아무것도 안 벤 것처럼. 그는 그것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다.
세드의 지팡이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끝이 탄 것. 오늘 밤 더 탔다. 불길을 가르느라. 그을음이 손잡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에반은 그것을 보았다. 한참. 그리고 집어 들었다. 천으로 닦았다. 그을음을. 손잡이의 땀을. 왜 닦는지 몰랐다. 다렌의 집에서 그는 늘 그랬다. 다렌이 자면 다렌의 검을 닦았다. 다렌은 몰랐다. 아니, 알았을 것이다. 아침에 검이 깨끗한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반은 세드의 지팡이를 닦았다. 끝이 탄 것은 닦이지 않았다. 손잡이만 깨끗해졌다. 그는 그것을 다시 벽에 기대 놓았다. 세드가 둔 자리에. 정확히.
그 다음에 그는 여관 문 앞에 앉았다. 밖에. 문턱에 등을 대고. 밤새 걸어서 다리가 아팠고, 검을 쥐었던 손이 펴지지 않았고, 눈을 감으면 광장의 불이 보였다. 그래서 감지 않았다. 강 건너로 새벽이 오는 것을 보았다. 안개가 물 위에 깔렸고, 새가 울었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아졌다.
그리고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경첩이 소리를 내지 않도록 천천히. 에반은 돌아보지 않았다. 누구인지 알았다.
세드는 문턱에 서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짐 자루를 들고 있었다. 외투를 입고 있었다.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떠나려는 사람의 차림이었다.
"마왕성까지 길을 아는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에반은 일어서지 않고 말했다.
"성채까지만." 세드가 말했다. 오래 지나서. "거기까지만 같이 간다. 거기서 피난민을 넘기면 끝이야."
"그 다음은요."
"그 다음은 없어."
에반은 일어섰다. 다리가 저렸다. 그는 세드를 보았다. 세드는 그를 보지 않았다. 강을 보았다. 둘은 화해하지 않았다. 화해할 것이 없었다. 에반은 세드를 믿지 않았고 세드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 다만 둘 다 같은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것은 동행이 아니라 그냥 같은 길이었다.
마구간에서 짐을 꾸릴 때 에반이 말했다.
"믿어서 같이 가자는 게 아니에요."
"알아."
"또 도망가면 찾아낼 거예요."
"그럴 힘 있으면 짐부터 들어 줘." 세드가 자루 하나를 밀었다. "빵이 생각보다 무거워."
에반은 자루를 들었다. 정말 무거웠다. 여관 주인에게서 산 것이었다. 세드의 돈주머니가 그만큼 가벼워져 있었다.
세드가 지팡이를 집었다. 벽에서. 손잡이를 보았다. 깨끗했다. 그는 에반을 보았다.
"……지팡이 닦았냐."
"아니요."
"닦았잖아."
"……아니요."
세드는 더 묻지 않았다. 지팡이를 쥐었다. 손잡이가 손에 붙었다. 그을음이 없어서. 그는 그것을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렌의 검이 아침마다 깨끗했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다렌이 말해 주었다. "저 녀석이 밤에 닦아. 모르는 척해 줘." 세드는 모르는 척했다. 지금도.
"이걸 다 샀어요?"
"네가 저녁을 네 번 먹더라."
에반은 반박하려다 그만두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다렌의 집에서, 저녁을 네 번 먹는 것을 세드는 본 적이 있었다. 일 년 전에. 다렌이 빵을 태우던 밤에. 세드는 그때 울타리가 아니라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었고, 에반이 다섯 조각째를 집을 때 "저 녀석 곰이야?"라고 다렌에게 물었다.
다렌의 목걸이는 에반의 목에 걸려 있었다. 세드는 그것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고, 에반은 줄 생각이 없었다.
피난민들은 여관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 노인들이 더 걸을 수 없었다. 세드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더 주고, 내일 아침 수레를 빌려 성채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주인은 돈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은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돈을 잘 쓴다. 자기 돈을.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둘은 북쪽으로 걸었다.
세드가 앞에 섰다. 길을 아니까. 에반은 뒤에서 따라갔다. 두 걸음 뒤에서.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았고 멀리 가면 놓칠 것 같았다. 세드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발이 멈춘다는 것을 에반은 몰랐다. 그냥 등만 보고 걸었다. 단추 하나가 다른 외투의 등.